한국 IT산업의 멸망

작년에 대한민국 IT 업계에 대한 쓴소리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개발자를 단순 노무직 취급하는 문화, 기획만 하면 대단한 줄 아는 구조,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 바닥을 떠나는 현실 같은 것들. 그때 느꼈던 답답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김인성이라는 이름은 IT 업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삼성SDS 출신으로 국내 굵직한 IT 프로젝트들을 경험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다. 제목부터 거침없다. ‘멸망’이라는 단어를 썼다. 경고도 아니고, 위기도 아니고, 멸망이다. 읽기 전부터 이 사람이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책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한국 IT 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저임금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구조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무너진다는 것이다. 대형 SI 업체들이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중소업체에 하청을 주고, 중소업체는 또 개인에게 내려보내는 구조. 개발자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밖으로 내쫓기고, 경력이 쌓여도 처우는 나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능력 있는 사람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많았다. 김인성이 묘사하는 현장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학교에서는 소프트웨어 공학을 가르치면서 정작 업계에서는 개발자를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다루는 이중성. 잘 만든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납기를 맞춘 소프트웨어가 좋은 소프트웨어로 인정받는 현실. 그 안에서 기술은 뒷전이 되고 관리와 문서가 전부가 된다.

저자가 공직자나 관료 출신이 아니라 현장 개발자 출신이라는 점이 이 책의 신뢰를 높인다. 이론이나 통계로 무장한 분석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사람이 털어놓는 이야기라서 읽는 내내 실감이 났다. 특히 대기업 IT 계열사들이 어떻게 기술 역량을 사장시켜 왔는지에 대한 서술은 꽤 구체적이고 날카롭다.

다만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이 다소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를 진단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있는데,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개발자들이 스스로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거나, 업계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이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책으로 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밥벌이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혼자 말해봤자 달라지지 않는다는 무력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인성은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꺼낸 셈이다.

이 바닥에서 일하고 있거나 앞으로 일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불편하더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